보이지않는 마음의 창살도 괴롭답니다.....ㅎ~


<사진 감상 노트>

렌즈 앞에 놓인 대상의 외시(겉으로 보이는 부분)를, 너무도 정확하고 또 너무도 재빨리 이미지를 자동생성할 수 있다는, 사진 매체가 지니는 고유한 특성이야말로, 사진을 기록의 목적으로 혹은, 사진을 표현의 수단으로 이끌어 가려는 작가의 의도를, 때때로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사진 외시의 탁월한 명징성은, 항상 작가가 사진 속에서 대상의 어떠한 내면을 담아 내는 일을 어렵게 하기도 하고, 또 감상자로부터 그 사진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내포를 들여다 보는 일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진이 이미지를 너무도 재빨리 자동생성할 수 있다는 그 능력까지 가세하기에 이르면, 사람이 눈과 뇌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까지도 그 외시에 고스란히 반영시키게 되고, 결국 그것은 지울 수 없는 자국으로 남아서, 사진 속에서 어떤 결정적인 상징과 지시적 요소로도 작용하게 됩니다.

임기순님의 사진 속에서도 이러한 사진의 명징한 외시와 재빠른 자동생성 때문에 나타나는, 우연하고도 다양한 상징과 지시적 요소를 발견하게 되고, 또 그것이 결국 사진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내포를 들여다 보게 만듭니다.

"동물은 몰이해라는 좁은 심연의 건너편에서 인간을 뚫어져라 본다." - 존 버거 

개장 속에 갇힌 한 마리 개는 분명히 촬영하는 사진가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사진은 그 개의 응시를 자유를 동경하는 서글픈 눈빛으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두 눈의 비율이 일그러진 개의 얼굴에 남은 쇠창살의 가늘고 긴 그림자 자국은, 사진가의 의도를 초월하여, 한 칼 먹임같은 슬픈 상처로써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솔제니친은 그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아무리 강제 노역과 배고픔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합니다만, 사진 속에서 실제 개는 창살 앞에서 꼿꼿이 앉아 있으려고 하지만, 벽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는 오히려 밥그릇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고 충격적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크리스천이라는 종교적이고 문화적인 공유코드를 가지고 바라보게 되면, 몇 가지 성경의 에피소드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그림자로 나타나 밥그릇을 응시하는 개를 통하여, 우리는 누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기에다,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시멘트 벽에 구불구불 가로로 남은 얼룩자국은, 르네상스 프레스코 벽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의 구름으로 화하여, 마치 이생의 염려와 천상의 행복 사이를 번민하는 경계선인듯 느껴집니다.

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는, 마태복음 15장의 에피소드를 기억하게도 합니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사진전문위원으로서 처음 쓰는 주간갤러리 사진 감상노트를 가능하면 짧게 쓰려고 하였으나, 임기순 권사님의 사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본의아니게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한 장의 사진 속에서, 수많은 신앙적 사유를 떠올릴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전문위원   황 소 연

* 소여니아/황소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01-22 11:17)